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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의 활성화를 위해 1세와 이어주는 다리가 되려고 합니다.

(매주 보내드리는 주간뉴스 특집으로 지회장 초대석을 마련했습니다. 40개 지회와 5개 준비 지회를 위하여 섬기시는 지회장님들을 소개하고 나누는 초대석에 많은 후원과 동참 부탁 드립니다.  – 사역지원센터 –) 

Fairfax-y 지회장 앤디김

지회장초대석 / 동부연합회 Fairfax-y 지회장 앤디김

 

  •   자신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0년에 부모님을 따라 버지니아주 ‘패어팩스’(Fairfax)로 이민을 왔습니다.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에 있는 주립대학교 ‘윌리암 앤드 메리'(William & Mary)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인디아나 대학교(Indiana University)에서 치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사촌의 소개로 유학 온 자매를 만났다가 3개월만에 결혼해서 14살 된 아들 한명을 두고 있습니다. 코비드 기간중에 강아지 ‘녹두’를 입양해서 1남1녀가 되었습니다. 집에 틴에이져(teenager)가 있으면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쉬운데, 녹두 덕분에 감사하게도 아들이 사춘기를 잘 넘기고 있습니다.

치대 졸업 후 다른분이 하는 치과에 근무하다가, 2008년에 개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4일진료’를 표방해 가족들과의 시간을 늘렸습니다.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지금도 관계가 무척 좋습니다.

6,7개국어를 하시는 외삼촌을 닮아서 그런지 언어에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습니다. 대학교 프로그램인 언어기숙사에서 일본돔(Japanese Dorm)을 선택하는 바람에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끔 일본 분들이 치과에 오시는데, 그분들께 일본말을 하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본 환자들을 소개시켜 줍니다.

고등학교 때 이민 왔다고 하면 저의 영어에 한국 액센트가 없는 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놀랍니다. 저는 언어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합니다. 악기는 베이스 기타를 칩니다. 이민오기 전에 성당을 다녔는데, 그때 받은 이름이 안드레아여서 미국에 와서도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 미아리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잠실에 아파트가 막 세워질 때 그곳으로 이사를 가서 이민 올 때까지 살았습니다. 미국와서 깜짝 놀란 것 중의 하나는, 과장을 안하더라도,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던 것의 10~20%밖에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한국에서 상위권에 들기는 했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닌데, 영어를 잘못 알아 들어도 수학 시험을 보면 항상 점수가 가장 높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애들은 바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가서 크게 깨졌습니다. 1,400명의 신입생 중 147명이 전교1등을 하던 학생들(valedictorian)이 들어왔는데, 그곳에서 미국의 상위5%-10% 사이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아, 이래서 미국이 돌아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 있을 때 흉부외과나 신경외과를 꿈꾸며 “서울대 의대 합격”이라는 글을 벽에 붙여놓고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하버드대 의대”를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의대 인터뷰에서 “가족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 하는데, 응급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통해 그 삶이 내가 원하는 삶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에 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중의 하나가 가족이었는데, 그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치과에서 인턴쉽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모든 환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친절하게 진료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치과가 나에게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캘리포니아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동시통역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MBA를 공부한 후 일을 통해 버지니아로 왔다가 저를 만났습니다. 결혼 후 주미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생겨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법에 관심이 있어 법과대학원(law school)에서 공부한 후, IRS와 문제가 있는 분들을 도와주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CBMC를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셨나요?

센터빌의 백수현 전지회장님과 현지회장님이며 동부연연합회의 부회장으로 섬기시는 구건모 회장님으로 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두분 다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삶을 어느 정도 아는데, 어느날 부터 뭔가 모르는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분들 왜 저러시지?”, “CBMC에 뭔가 있는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CBMC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센터빌지회에 나온 초창기에 워싱턴DC 지역에서 미주총연을 했는데, 지회가 근처에 있던 관계로 센터빌지회와 메릴랜드지회가 함께 도왔는데, 그 준비과정에 많은 참여를 했습니다. 그 후에 총무로 지회를 4년 정도 섬겼습니다.

 

  •   언제부터 CBMC 지회장으로 섬기시기 시작하셨나요

달라스에서 열린 Y총회에 참석했는데, 그 총회를 다녀온 후 워싱턴 DC 지역에 Y지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세근 회장님과 김영주 회장님으로 부터 강고은 이사님과 함께 점심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Fairfax Y지회’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회를 시작하는 것이 워낙 큰 일이라 마음의 부담이 되어 망설이니까 강고은 이사님이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기도하는 가운데 Y지회에 대한 마음이 크게 다가와 용기를 내었습니다.

1년 반 정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20년 5월에 CBMC처음으로 대면과 줌인 하이브리드로 창립식을 했습니다. 창립을 하면서 부터 지회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회모임

  • 섬기시는 지회를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Y지회’라고 하지만 거의가 40대 중∙후반 분들입니다. CBMC에서 50대 미만을 Y세대로 정의하지만, 어떻게 보면 40대 중∙후반은 아주 젊은 것도 아닌데 굳이 ‘Y지회’라고 이름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지회를 준비하는 가운데 들었습니다. CBMC지회장님 출신들이 60세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 자녀들이 20-30세 정도가 될 겁니다. 우리가 1.5세로서 이중언어와 문화가 되니까, 2세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그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정리가 되어 갔습니다. 그것이 CBMC의 현 상황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을 ‘가장 잘 사용’(maximize)하는 것일 겁니다. 비전스쿨강사 4분중 3분이 Y출신인 것을 보면 앞으로 2세의 활약이 요구되고 기대가 되는 상황입니다.

Fairfax-Y가 특별한 것 중의 또 다른 하나는 남녀가 구별없이 활동하는 겁니다. 지회안에는 모임에 몇번 참석하고 바로 비전스쿨에서 교육받은 후 열심히 섬기시는 분도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줌으로 모이면서 활동반경이 넓어져 보스턴에서도 한 분이 합류해 현재는 8명이 섬기고 있습니다.

 

  •  CBMC를 만나고 변화된 것이 있으신지요?

아들과 함께

저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느끼는 사람들은 아내와 아들일 겁니다. 지회모임을 매주 목요일에 하는데, 수요일만 되면 신이나서(excited) 준비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가족에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말이 그렇지 사실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만나 모임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끔 피곤할 때나 힘들 때는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지회장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지회를 섬길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제는 좀 더 너그러워진 것 같습니다. 직책을 맡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바뀐 것 같습니다.

 

  •   지회를 섬기시면서 좋은 점이나 어려운 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솔선수범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니까 점차 더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보고 크리스찬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면 안되잖아요. CBMC에 ‘누’(nuisance)가 될 수 있으니까 더 조심스러워 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CBMC를 만나고 난 후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점은, 모든 지회원들이 열심히 하셔서 감사한 부분은 많으나, 때때로 모임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참석률이 저조할 때 힘이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   북미주 KCBMC의 사명과 비전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시겠습니까?

지회원들과 함께

“Life on life”라는 말 한 마디가 저에게는 CBMC 사명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Life on life는 누군가와 내 삶을 나누는 것이 잖습니까! 삶을 나눈다는 것은 시간을 나누는 것인데, 자기가 갖고 있는 한정된 시간에서 할애해야 하는 것이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를 양육하게 되면 매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life on life라고 생각합니다. CBMC의 사명과 비전은 당연히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므로, ‘같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크게 다가오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   일대일 양육을 정기적으로 하고 계시는지요?

폴현 사무총장님께서 life on life를 강조하시고, 저도 ‘월요만나’를 해 오면서 점차 일대일 양육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분과 조만간 만나 일대일로 디모데 양육처럼 해보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씨 뿌리고(sowing), 개간하고(cultivating), 농사해서(farming), 나중에 수확까지(harvest) 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도와 양육이라는 말은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전도지 한장 주고, “믿으세요”, 하면 거의가 믿지 않습니다. 기도로 마음에 품고 몇년동안 기도하면서 씨를 뿌리면, 몇년이 지나서 전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서두르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한 생명이 중요하니까, 일대일(one on one)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북미주 KCBMC 총연 또는 연합회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동부연합회의 안일송 연합회장님도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고, 폴현 사무총장님도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 크게 바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Y에서 총연처럼 모임도 할 것이고, Y세대들도 점차 리더십에 들어가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 Y세대로 바뀌어 가는 시기(transition)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E-CBMC가 총연이나 연합회에서 더 섬기며 다음 세대로 잘 이어지도록 1세대와 2세대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숫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E-CBMC가 주어진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정성껏 참여해 주시고 좋은 나눔을 주신 앤디김 지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북미주 KCBMC 사역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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